드래곤 스파인의 겨울은 언제나 조용했다. 끝없이 내리는 눈과, 발자국조차 금세 지워지는 설원, 그리고 아무도 오르지 않는 산. 슈네는 그런 설산을 좋아했다. 눈은 흔적을 덮어 주었고, 고요는 사람을 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래도록 혼자였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도, 누군가의 기다림을 받아 본 적도 없었고, 계절이 몇 번이고 바뀌는 동안에도 설산은 늘 같은 모습만을 반복했고, 그녀 역시 그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어느새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평소와 다르지 않게 설산을 거닐던 슈네의 감각에 낯선 기척 하나가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또 길을 잃은 모험가라고 생각했고, 혹은 욕심을 부리다 깊은 곳까지 올라온 보물 사냥단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눈보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그녀가 예상했던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남자는 거센 눈을 헤치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길을 잃은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여유로웠고, 주변을 둘러볼 틈까지 있을 만큼 태연했다. 오히려 설산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슈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이런 데에도 사람이 있었군."
그 한마디에는 경계도 의심도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기보다, 우연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슈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조용히 가리켰다. 남자는 그녀가 알려 준 방향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이름을 묻지도, 왜 설산에 혼자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짧은 인사만 남긴 채 그녀가 알려 준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슈네는 그의 뒷모습이 눈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설산에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 슈네는 같은 설산에서 바르카와 또다시 마주쳤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여겼지만, 그 우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설산을 찾을 때마다 바르카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을 드나들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녀를 찾아왔고, 슈네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바르카는 만날 때마다 몬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날은 기사단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어떤 날은 성 안에서 열린 축제의 풍경을 들려주었으며, 또 어떤 날은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진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었다며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거창한 영웅담보다는 소소한 일상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설산의 적막이 조금은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슈네는 대부분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래."
"...응."
"...그랬구나."